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(문단 편집) === 초기 === 대단한 집안 출신도 아니었던만큼 그리 썩 많은 것이 알려져있지는 않다.[* 사실 개나소나 다 아는 [[율리우스 카이사르]]의 유년시절조차 그렇게 대단히 알려져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니 롱기누스 정도야 뭐...] [[플루타르코스 영웅전]]에 의하면 유년기 시절 [[술라]][* 당시 로마를 철권통치하던 독재자]의 아들 [[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]]와 술라의 통치에 관해 키배를 뜨면서 독재자를 싫어하던 모습을 보여주었다라는 기록이 남긴 하지만 <플루타크 영웅전>이 1차 사료가 아니라 이 시기로부터 100년 이상 지난 뒤에 작성된 2차 사료인만큼 신뢰도는 글쎄... 이후 [[로도스]]로 유학을 갔으며 32세였던 기원전 53년에는 [[크라수스]]와 함께 '''로마 공화정 시대 최악의 패배이자 흑역사로 기록된''' [[카르헤 전투]]의 기병 지휘관으로 참전한다. 이때 전투 막판 패배가 자명해지자 기병 500기만을 거느리고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데, 이후 1만에 가까운 패잔병을 수습해 이 병력으로 파르티아의 역공을 막아낸다.[* 다시 말해 크라수스가 4만의 정규군을 갖고도 패배한 상대를 1만의 패잔병만으로 막아내 크라수스의 군사적 무능력함을 만천하에 인증해줬다.] 이것만 봐도 능력면에서는 꽤나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.[* 동시에 [[크라수스|죽은 상사]]의 [[카르헤 전투|무능한 지휘에]] 얼마나 학을 뗐을지도 대강 유추할 수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